제2부 제2장 : 잉마르 베리만 -기억은 어떻게 자아를 만드는가

2026. 7. 9. 04:07·3. 영화+게임+애니

제2장 : 잉마르 베리만 기억은 어떻게 자아를 만드는가

― 기억은 과거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의 구조이다

사진 해설: (왼쪽부터) 잉마르 베리만, 《산딸기》, 《페르소나》, 《제7의 봉인》. 베리만은 기억을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해체하고 다시 구성하는 힘으로 탐구했다.


Ⅰ. 질문

이번 장의 질문은 영화철학뿐 아니라 인간학 전체를 관통한다.

나는 기억 때문에 '나'인가?

아니면

현재의 내가 기억을 선택하기 때문에 '나'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심리학이 아니다.

자아의 존재론에 관한 질문이다.

그리고 이 질문을 가장 깊이 탐구한 감독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잉마르 베리만이다.


Ⅱ. 베리만 영화에는 왜 과거가 계속 돌아오는가

베리만의 영화를 보면

현재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현재는

곧

과거에게 침식당한다.

어린 시절

↓

부모

↓

신앙

↓

죄책감

↓

첫사랑

↓

죽음

이 모든 것이

현재 속으로 계속 돌아온다.

흥미로운 점은

과거가 플래시백처럼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는

현재 안에서 살아 움직인다.


Ⅲ. 기억은 사건이 아니라 감정이다

사람들은

어린 시절을 기억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기억하는 것은

사건보다

감정이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첫날을 떠올릴 때

교실 구조보다

두려움이나 설렘을 먼저 기억한다.

베리만은

바로 이 감정의 흔적을 영화로 만든다.


Ⅳ. 《산딸기》: 기억 속으로 떠나는 여행

Wild Strawberries는

노년의 의사 이삭 보리(Professor Isak Borg)가 명예학위를 받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줄거리만 보면 단순한 로드무비다.

그러나 실제 여행은

도로 위가 아니라

기억 속에서 일어난다.


꿈에서 시작되는 영화

영화의 첫 장면은

현실이 아니다.

주인공은

꿈을 꾼다.

시계에는 바늘이 없다.

거리는 비어 있다.

마차가 지나간다.

관이 떨어진다.

관 속에는

자기 자신이 있다.

이 장면은

죽음의 공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베리만은

묻는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는 누구였는가?


Ⅴ. 산딸기의 의미

왜 제목이

'산딸기'일까?

산딸기밭은

주인공의 첫사랑과 연결된 장소다.

그러나

그는

그 기억을 되찾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기억이

현재의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즉,

기억은

과거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게 만든다.


Ⅵ. 《페르소나》: 기억이 무너지면 자아도 무너지는가

Persona는

영화사에서 가장 난해한 작품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한 배우는

갑자기 말을 하지 않는다.

한 간호사는

끊임없이 말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둘의 얼굴,

기억,

정체성이

서로 뒤섞인다.


'페르소나'란 무엇인가

'페르소나(persona)'는 원래

고대 연극에서 배우가 쓰던 가면을 뜻한다.

이후 심리학에서는

사회 속에서 타인에게 보여 주는 자아를 의미하게 되었다.

베리만은 질문한다.

가면을 벗으면 무엇이 남는가?


Ⅶ. 기억은 자아를 지키는 접착제다

《페르소나》에서

기억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다.

기억은

자아를 연결하는 실이다.

만약 기억이

흩어진다면

자아도

흩어진다.

베리만은

이 과정을

매우 급진적인 영상 언어로 표현한다.


Ⅷ. 침묵은 왜 중요한가

베리만 영화에서

침묵은

정보의 부재가 아니다.

침묵은

기억이 말보다 깊은 곳에서 작동하는 순간이다.

우리는

가장 깊은 상실을

쉽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침묵은

망각이 아니라

너무 깊은 기억의 형태가 된다.


Ⅸ. 얼굴은 기억을 담는 장소다

베리만의 카메라는

유난히

얼굴을 오래 바라본다.

눈,

주름,

입술,

침묵.

왜일까?

얼굴은

시간이 가장 오래 머무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주름은

시간의 흔적이며,

표정은

기억의 흔적이다.

베리만은

풍경보다

얼굴에서

시간을 읽는다.


Ⅹ. 죄책감은 기억의 가장 강한 형태다

베리만 영화에는

죄책감이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그 죄책감은

법적인 것이 아니다.

"그때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조금 더 사랑했어야 했는데."

"용서했어야 했는데."

이러한 후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기억 속에서

더 선명해진다.


Ⅺ. 신은 왜 침묵하는가

베리만 영화에는

신에 대한 질문이 반복된다.

그러나

신은

쉽게 대답하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종교가 아니라

침묵이다.

인간은

답을 얻지 못한 질문을

오랫동안 기억한다.

베리만은

바로

그 기억의 무게를

영화로 만든다.


Ⅻ. 베리만과 프로이트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현재의 행동은

억압된 기억과 연결된다고 보았다.

베리만 역시

과거는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프로이트는

기억을

분석하려 한다.

베리만은

기억을

살아내게 한다.


ⅩⅢ. 베리만과 들뢰즈

질 들뢰즈는

베리만을

시간-이미지의 중요한 감독으로 평가했다.

그 이유는

베리만의 영화에서는

행동보다

사유가,

사건보다

기억이

영화를 움직이기 때문이다.

베리만의 인물들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행동하기보다,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기억 속을 걸어간다.


ⅩⅣ. 베리만이 발견한 기억의 구조

베리만 영화를 종합하면

기억은 네 단계로 작동한다.

 

단계 의미
회상 과거가 떠오른다.
감정 기억은 감정을 다시 불러온다.
해석 현재의 내가 과거를 다시 이해한다.
자아 그 해석이 현재의 나를 형성한다.

즉,

기억은

과거를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자아를 계속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ⅩⅤ. 타르콥스키와 베리만

여기서

제1부와 연결되는 흥미로운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타르콥스키 베리만
존재는 시간을 살아간다. 자아는 기억을 살아간다.
자연이 시간을 보여준다. 얼굴이 기억을 보여준다.
롱테이크가 시간을 체험하게 한다. 클로즈업이 기억을 체험하게 한다.
시간은 존재의 흐름이다. 기억은 자아의 구조다.

두 감독 모두

내면을 탐구하지만,

한 사람은

존재론으로,

다른 사람은

심리와 자아의 존재론으로 접근한다.


ⅩⅥ. 베리만의 가장 위대한 발견

베리만은

기억이 과거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기억은

항상

현재에서

우리 자신을 다시 만드는 힘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의 영화를 보고 나면

우리는

줄거리보다

자신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

이것이

베리만 영화가 지금도 강력한 이유다.


ⅩⅦ. 이 장의 핵심 결론

  1. 베리만에게 기억은 과거의 저장소가 아니라 현재의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2. 《산딸기》는 기억을 통해 현재의 삶을 재해석하는 영화이다.
  3. 《페르소나》는 기억과 자아의 경계가 무너질 수 있음을 극단적으로 실험한다.
  4. 얼굴, 침묵, 죄책감은 모두 기억을 시각화하는 영화적 언어이다.
  5. 베리만은 기억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가장 깊이 탐구한 감독 가운데 한 사람이다.

다음 장 예고

다음 장에서는 **제3장 「알랭 레네 ― 역사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는가」**를 진행한다.

이 장에서는 특히 다음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룬다.

  • 알랭 레네의 기억과 역사 철학
  • 《Hiroshima mon amour》와 《Last Year at Marienbad》를 중심으로 한 기억의 불확실성
  • 개인의 기억과 집단 기억은 어떻게 충돌하는가
  • 전쟁과 트라우마는 왜 완전히 과거가 되지 않는가
  • 그리고 "망각은 치유인가, 또 다른 폭력인가?"라는 질문을 영화철학의 관점에서 탐구하겠다.
저작자표시 동일조건 (새창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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