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총론 제48장. 편집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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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문화와 장르/22. 영화와 영상
제48장. 편집의 미학: 한국영화는 어떻게 시간과 인과관계를 재구성하는가영화에서 한 장면이 끝나고 다른 장면이 시작될 때, 우리는 두 장면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문을 닫은 다음 장면에서 다른 사람이 길을 걷는다면, 두 사건은 같은 이야기의 일부로 받아들여진다. 한 인물이 웃는 얼굴을 보여준 뒤 다른 인물의 눈물을 보여주면, 우리는 그 눈물에 앞선 웃음의 의미를 연결하려 한다.그러나 두 장면이 이어진다고 해서 반드시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장면을 배열하는 방식만으로도 관객에게 특정한 관계를 추론하게 할 수 있다.편집은 이미 일어난 사건을 정리하는 기술이 아니다. 관객이 사건을 어떤 순서로 경험하고, 어떻게 이해할지를 결정하는 영화의 언어다.한국영화의 편집을 살펴보면 시..
한국 영화 총론 제47장. 소리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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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문화와 장르/22. 영화와 영상
제47장. 소리의 미학: 한국영화는 왜 침묵과 소음으로 세계를 만드는가 사진 1. 《살인의 추억》. 비와 주변의 소리는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를 채우고, 수사의 불안과 막막함을 증폭한다. 사진 출처: Télérama 영화 리뷰영화는 눈으로 보는 예술이지만, 관객은 눈으로만 영화를 경험하지 않는다. 발소리가 들리면 누군가 다가오고 있다고 느낀다. 문밖에서 기척이 나면 화면에 없는 공간을 상상한다. 음악이 갑자기 멈추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불안해진다.소리는 화면에 없는 세계를 관객의 감각 속에 만들어낸다.한국영화의 소리는 대사와 배경음악에 머물지 않는다. 논밭의 빗소리, 아파트의 층간 소음, 골목의 자동차 소리, 멀리서 들리는 기계음, 누군가 숨을 삼키는 소리까지 영화의 의미를 구성한다. 때로는 인..
한국 영화 총론 제46장. 색채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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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문화와 장르/22. 영화와 영상
제9부. 한국영화의 미학제46장. 색채의 미학: 한국영화에서 색은 어떻게 기억과 감정을 조직하는가 사진 1. 《기생충》(2019)의 정원과 실내 공간. 차분한 녹색과 절제된 실내 색채는 인물의 계급적 위치와 공간의 질서를 시각적으로 구성한다. 이미지 출처: Parasite scene analysis영화의 색은 화면을 아름답게 꾸미는 장식이 아니다. 색은 인물이 살아가는 세계의 분위기를 만들고, 관객이 사건을 기억하는 방식을 바꾼다.우리는 영화를 보고 난 뒤 모든 장면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어떤 색은 오래 남는다. 《기생충》의 절제된 실내와 비에 젖은 거리, 《아가씨》의 짙은 녹색 의상과 어두운 저택, 《헤어질 결심》의 푸른빛과 청록색 풍경처럼 특정한 색채는 영화 전체의 인상을 압축한다.색은 인물의..
한국 영화 총론 제45장. 클로즈업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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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문화와 장르/22. 영화와 영상
제9부. 한국영화의 미학제45장. 클로즈업의 미학: 한국영화는 왜 얼굴을 오래 바라보는가영화에서 얼굴은 감정이 드러나는 장소이면서, 타인의 내면을 완전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장소이기도 하다.클로즈업(close-up)은 인물의 얼굴이나 특정한 사물을 화면 가까이 끌어오는 촬영 방식이다. 얼굴의 작은 떨림, 입술이 열렸다 닫히는 순간, 눈길이 흔들리는 움직임이 화면을 채우면 관객은 인물의 내면에 가까이 다가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그러나 가까이 본다고 해서 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눈물이 흐른다고 반드시 슬픔인 것은 아니며, 미소가 떠오른다고 반드시 기쁜 것도 아니다. 사람은 감정을 감추고, 자기 자신에게조차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며, 때로는 서로 모순되는 감정을 동시에 경험한다.클로즈업은..
한국 영화 총론 제44장. 롱테이크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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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문화와 장르/22. 영화와 영상
제9부. 한국영화의 미학제44장. 롱테이크의 미학: 한국영화는 왜 시간을 멈추지 않는가 사진 1. 이창동 감독의 《버닝》(2018). 인물들이 한 공간에 머물지만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장면은, 하나의 시간이 여러 개의 내면으로 갈라지는 순간을 보여준다. 사진 출처: 뉴욕현대미술관(MoMA). 영화 상영 및 작품 소개 영화는 시간을 잘라내는 예술이다. 그러나 롱테이크는 그 시간을 쉽게 잘라내지 않으려는 선택이다.우리는 보통 영화의 편집을 의식하지 않는다. 인물이 말하면 상대방의 얼굴로 화면이 바뀌고, 누군가 문을 열면 다음 장면에서 이미 다른 장소에 도착해 있다. 영화는 현실에서 걸리는 시간을 줄이고, 불필요해 보이는 순간을 삭제하며, 관객이 이야기의 핵심을 놓치지 않도록 안내한다. 롱테이크(long ..
한국 영화 총론 제43장. 침묵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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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문화와 장르/22. 영화와 영상
제9부 │ 한국영화의 미학제43장. 침묵의 미학 ― 한국영화는 왜 말하지 않는가사진 1. 이창동의 《시》(2010). 인물이 바라보는 풍경과 말하지 못하는 감정이 시적 침묵을 형성한다.사진 2. 김기덕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대사보다 계절과 몸짓, 공간의 반복을 통해 삶의 순환을 드러낸다.사진 3. 허진호의 《8월의 크리스마스》(1998). 사진관과 일상의 작은 행동들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사랑과 죽음의 감각을 전달한다.사진 4. 홍상수 영화의 일상적 대화 장면. 말이 끊기거나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는 순간, 인물이 감추려 했던 감정과 자기기만이 드러난다.한국영화의 미학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하나의 역설에서 출발해야 한다.영화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예술이다. 그런데 한국영화의 중요한..
리플리증후군과 인지부조화: 의도성은 무엇을 바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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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질문과 사유/7. 비판적 사고와 판단
1. 리플리증후군과 인지부조화: 의도성은 무엇을 바꾸는가?리플리증후군과 인지부조화를 구분하는 핵심은 단순히 거짓말을 했는가, 자신의 생각을 바꾸었는가에 있지 않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과 자신이 믿거나 주장하는 내용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있다.두 현상은 모두 현실과 믿음 사이의 불일치와 관련될 수 있다. 그러나 인지부조화는 그 불일치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긴장과 이를 줄이려는 과정에 관한 개념이고, 이른바 리플리증후군은 거짓된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그것을 실제 현실처럼 받아들이는 상태를 가리키는 대중적 표현이다.특히 의도성의 측면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분이 중요하다. 인지부조화: 불일치를 느끼고 줄이려는 심리적 과정이다. 반드시 거짓말을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의식적인 거짓말: 자신이 ..
감정자본주의 시대에 자신의 욕망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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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인간과 존재/2. 의식과 인지
감정자본주의 시대에 인간은 자신의 욕망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감정자본주의 시대에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욕망을 마주한다. 더 좋은 물건, 더 매력적인 외모, 더 높은 지위, 더 많은 인정과 특별한 경험을 원하게 된다. 광고와 플랫폼은 이러한 욕망을 자극하고, 불안과 외로움을 해결할 상품을 제시한다. 그러다 보면 외부에서 형성된 욕망도 자신의 본래 마음처럼 느껴질 수 있다.그렇다고 사회의 영향을 받은 욕망이 모두 가짜인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원하는가뿐 아니라 왜 원하는가, 그 욕망이 실제로 무엇을 해결하는가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욕망을 없애는 대신 그 출처와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1. 욕망은 어떻게 내 안에 들어오는가인간의 욕망은 신체적 필요뿐 아니라 문화와 관계,..
감정자본주의는 어떻게 불안과 외로움을 지속적인 소비 욕구로 바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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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사회와 권력/14. 자본·경제·노동
감정자본주의는 어떻게 불안과 외로움을 지속적인 소비 욕구로 바꾸는가?불안과 외로움은 인간에게 낯선 감정이 아니다. 사람은 미래를 확신할 수 없을 때 불안해하고, 타인과 충분히 연결되어 있지 않다고 느낄 때 외로움을 경험한다. 문제는 이러한 감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현대 사회가 감정을 다루는 방식을 소비와 연결한다는 데 있다.감정자본주의의 관점에서 시장은 불안과 외로움을 상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처럼 표현한다. 화장품과 의류는 자신감을, 음식과 음료는 위로를, 여행과 취미 상품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디지털 서비스는 연결과 소속감을 약속한다.핵심은 불안과 외로움이 소비를 낳는다는 사실보다, 소비가 감정을 해결하는 기본적인 방법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 있다. 소비는 실제로 기쁨과 위안을 줄 수 ..
설탕과 감정자본주의: 광고와 소비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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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문명과 기술/19. 소비·생활양식
설탕과 감정자본주의: 광고와 소비문화는 피로와 외로움, 위로의 욕구를 어떻게 상품 구매로 연결하는가?설탕의 역사를 감정자본주의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설탕은 단순한 식품을 넘어선다. 설탕은 피로를 달래는 보상, 외로움을 잠시 잊게 하는 동반자, 축하와 위로를 표현하는 선물, 일상을 견디게 하는 작은 사치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단맛이 실제로 기분에 영향을 주는가에만 있지 않다. 사회는 어떤 과정을 거쳐 감정의 필요를 상품의 소비와 연결하는가?감정자본주의란 감정이 경제활동의 주변 요소에 머무르지 않고, 상품의 생산과 광고, 노동과 소비를 조직하는 중요한 자원이 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기업은 물건의 기능만 판매하지 않는다. 그 물건을 소비하면 어떤 기분을 느낄 수 있는지,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경험할 ..
설탕의 역사와 문명철학:달콤함의 제국, 노동의 기억, 감정의 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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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사회와 권력/14. 자본·경제·노동
설탕의 역사와 문명철학달콤함의 제국, 노동의 기억, 감정의 정치경제학설탕은 어떻게 인간의 입안에서 시작해 세계경제를 움직이고, 식민주의와 노예제의 역사를 거쳐 현대인의 감정과 일상까지 깊숙이 들어오게 되었는가?설탕의 역사는 식품의 역사를 넘어선다. 자연의 단맛을 추출하고 상품으로 만들며, 그것을 권력과 이윤으로 전환하고, 마침내 일상의 습관과 감정에 정착시키는 과정이기 때문이다.설탕에는 두 가지 역사가 겹쳐 있다. 하나는 인간이 단맛을 선호하는 생물학적 역사이고, 다른 하나는 누가 설탕을 생산하고 소유하며 소비했는지를 둘러싼 사회적 역사다. 이 두 역사가 만나는 곳에서 설탕은 단순한 감미료를 넘어 문명을 해석하는 열쇠가 된다.1. 설탕의 기원: 자연의 단맛이 문명의 기술이 되다 agriinvestor...
시민은 자신이 인지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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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사회적 병리/27. 선동·밈·프로파
시민은 자신이 인지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는가?1. 인지전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이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데 있다시민은 자신이 정치적 설득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대체로 알고 있다. 선거철에 정당이 광고를 내보내고, 정치인이 연설을 하며, 언론이 특정 정책을 비판하거나 옹호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접하는 정보의 배열과 반복, 감정적 자극, 출처의 선택이 장기간에 걸쳐 자신의 판단 기준을 바꾸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인지전의 어려움은 시민에게 반드시 거짓말을 믿게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무엇을 중요한 문제로 생각할지, 누구를 신뢰할지, 어떤 집단을 의심할지, 어떤 사건을 정상적이거나 위협적인 것으로 받아들일지를 서서히 바꾸는 데..
민주사회에서 정당한 정치적 설득과 조작적 인지전은 어떤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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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사회와 권력/11. 민주주의와 공화국
1. 민주사회에서 정당한 정치적 설득과 조작적 인지전은 어떤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는가?민주주의에서 사람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정치인은 유권자를 설득하고, 시민단체는 여론을 형성하며, 언론은 특정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시민 역시 토론과 경험을 통해 자신의 판단을 바꾼다. 민주주의는 오히려 이러한 설득과 논쟁이 자유롭게 이루어질 때 작동한다. 그렇다면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핵심은 다른 사람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영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판단 능력과 자율성을 존중했는가에 있다. 정당한 정치적 설득은 상대방이 근거를 검토하고 반론을 제기하며 자신의 판단을 수정할 수 있도록 한다. 반면 조작적 영향력 행사는 거짓 정보, 중요한 맥락의 은..
그람시의 진지전에서 인지전의 진지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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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사회적 병리/27. 선동·밈·프로파
그람시의 진지전에서 인지전의 진지전으로상식과 판단의 장기전이 주제를 이해하는 핵심은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한다.사람은 어떻게 특정한 생각을 믿게 되는가? 그리고 그 생각은 어떻게 개인의 의견을 넘어 사회의 상식이 되는가?우리는 흔히 정치적 갈등을 서로 다른 주장들이 충돌하는 현상으로 이해한다. 한쪽은 개혁이라고 말하고 다른 쪽은 파괴라고 말한다. 한쪽은 정의라고 주장하고 다른 쪽은 특혜라고 비판한다. 이때 논쟁은 양쪽이 제시하는 증거와 논리의 대결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다른 질문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왜 어떤 주장은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주장은 듣기도 전에 거부하는가? 왜 같은 사실을 보고도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가? 왜 자신의 판단에 불리한 증거가 등장했을 때 ..
인지전에서의 진지전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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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사회적 병리/27. 선동·밈·프로파
1. 인지전에서의 진지전이란 무엇인가?인지전에서의 진지전은 사람들의 생각을 한 번에 바꾸려는 싸움이 아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사실이라고 믿고, 어떤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며, 누구를 신뢰하고, 어떤 선택을 합리적이라고 판단하는지를 장기간에 걸쳐 형성하려는 싸움이다. 이 관점에서 진지전은 단순한 여론전보다 깊고, 선전전보다 넓으며, 특정 사건을 둘러싼 가짜뉴스 대응보다 훨씬 긴 시간축을 갖는다. 예를 들어 어떤 정치적 사건이 발생했을 때, 두 진영이 서로 다른 주장을 내놓는 것은 일반적인 여론전이다. 그런데 한쪽이 오랫동안 언론, 교육, 온라인 공동체, 문화적 상징과 반복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다음과 같은 인식의 틀을 구축했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누구의 말은 믿을 만하고 누구의 말은 믿을 수 없는가.어떤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