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장. 폐허 위에 세워진 도시― 서울은 어떻게 산업화의 수도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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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사회와 권력/12. 정치권력과 국가
제38장. 폐허 위에 세워진 도시― 서울은 어떻게 산업화의 수도가 되었는가사진해설: 전쟁 직후 복구가 진행 중인 서울 도심과 산비탈에 형성된 판잣집 마을. 1950년대 서울은 폐허를 복구하는 도시이면서 동시에 전국의 사람들이 몰려드는 거대한 이주 도시가 되었다.1953년.대한민국은 전쟁에서 살아남았다.그러나 사람들은 한 가지 사실을 곧 깨닫기 시작했다.고향이 더 이상 삶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것.농촌은 가난했다.논과 밭은 전쟁의 상처를 입었다.일자리는 많지 않았다.반면 서울에는정부가 있었고,학교가 있었고,공장이 있었고,원조물자가 들어왔으며,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기 시작했다.그래서 사람들은 움직였다.한 사람.한 가족.한 마을.조금씩,그러나 끊임없이.이 이동이 훗날 대한민국을 도시국가로 바꾸는 첫걸음이었다...
제37장. 반공국가는 어떻게 일상이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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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장. 반공국가는 어떻게 일상이 되었는가― 냉전은 교실과 가정, 그리고 사람들의 생각까지 어떻게 바꾸었는가사진해설: 1950년대 대한민국의 학교 교육과 민방위·방공훈련 모습. 한국전쟁 이후 반공은 단순한 외교정책이 아니라 학교 교육, 언론, 군사훈련, 지역사회 활동을 통해 일상 속 규범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1953년.총성은 멈췄다.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북한은 바로 북쪽에 있었다.군사분계선은 언제든 다시 무너질 수 있다고 여겨졌다.수백만 명의 사람들은가족을 북에 남겨두었다.전쟁의 기억은 너무도 생생했다.그래서 대한민국은단순히 국가를 재건하는 일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국민의 생각도,생활도,교육도,국가를 지키는 방향으로 다시 조직하려 했다.이것이1950년대 이후 대한민국..
제36장. 원조로 살아남은 나라― 미국과 유엔의 돈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다시 움직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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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장. 원조로 살아남은 나라― 미국과 유엔의 돈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다시 움직였는가사진해설: 전쟁 직후 유엔한국재건단(UNKRA)의 재건사업과 미국 원조물자의 하역 장면. 1950년대 대한민국은 국제원조를 바탕으로 식량·주택·학교·병원·도로·공장 등을 복구하며 국가 재건을 시작했다.1953년.대한민국은 살아남았다.그러나 아직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나라는 아니었다.공장은 멈춰 있었다.농촌은 황폐했다.철도는 끊어졌다.발전소는 파괴되었다.정부 재정은 바닥나 있었고,외화를 벌어들일 산업도 거의 없었다.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먼저 국민을 먹여야 했다.그리고 공장을 다시 돌려야 했다.그 돈은 어디에서 왔을까.대부분은미국과 국제사회의 원조였다.그러나 여기에서 흔히 하는 오해가 있다."대한민국은 미국 돈으로 성장..
제35장. 폐허에서 국가로― 한국전쟁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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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전쟁 이후의 대한민국제35장. 폐허에서 국가로― 한국전쟁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꾸었는가한국전쟁이 끝난 뒤 대한민국에 남은 것은 평화로운 나라가 아니었다.전선은 멈췄지만,도시는 무너져 있었고수많은 사람은 집을 잃었으며가족은 흩어졌고산업시설은 파괴되었으며국가는 막대한 군사비를 감당해야 했다.1953년 당시 미국 측 조사자료는 남한에 약 250만~300만 명의 피난민, 약 600,000호의 주택 파괴, 10억 달러를 넘는 전쟁 피해를 추산했다. 당시 대한민국 인구가 약 2,150만 명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사회 전체가 전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셈이다. (역사적 자료)그러나 여기서부터 한국 현대사의 아주 중요한 역설이 시작된다.폐허가 국가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내는 출..
제34장. 정전은 평화가 아니었다― 1953년 7월 27일,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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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장. 정전은 평화가 아니었다― 1953년 7월 27일,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멈췄다사진해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조인되었다. 그러나 이 문서는 평화조약이 아니라 군사적 적대행위를 중단하기 위한 협정이었다. 그 결과 만들어진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는 오늘날까지 한반도를 가르는 가장 상징적인 공간으로 남아 있다.1953년 7월 27일.한국전쟁은 멈췄다.그러나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단어 하나를 구별해야 한다.종전(終戰)이 아니라 정전(停戰)이었다.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의 정전협정 원문은 이 협정의 목적을 최종적인 평화적 해결이 이루어질 때까지 적대행위를 완전히 중단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또한 협정 자체가 군사적 성격의 문서였으며 국가 간 평화조약이 아니었다고 설명한다. (Na..
제33장. 이승만의 마지막 도박― 휴전을 막기 위해 포로를 풀어준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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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장. 이승만의 마지막 도박― 휴전을 막기 위해 포로를 풀어준 대통령사진해설: 1953년 휴전을 앞두고 이승만은 정전협정이 한반도 분단을 영구화할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그의 일방적인 반공포로 석방은 미국과 유엔군사령부가 추진하던 휴전 절차를 실제로 중단시킬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1953년 6월.한국전쟁은 마침내 끝을 향하고 있었다.전선은 사실상 고정되어 있었다.휴전협상도 마지막 단계에 들어갔다.포로 문제 역시 해결의 방향이 잡히고 있었다.그런데 바로 그 순간,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이 움직였다.6월 18일 새벽, 대한민국 정부의 지시를 받은 경비병들이 유엔군사령부가 관리하던 포로수용소의 반공 성향 한국인 포로들을 풀어주기 시작했다.미국 국무부가 훗날 정리한 당시 자료에 따르면 약 2만 7천 ..
제32장. 고지 위의 전쟁― 왜 1952년의 한국전쟁은 더 잔혹해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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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장. 고지 위의 전쟁― 왜 1952년의 한국전쟁은 더 잔혹해졌는가사진해설: 1952년의 한국전쟁은 대규모 도시 점령전보다 고지와 능선을 둘러싼 전투가 중심이 되었다. 병사들은 이미 휴전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협상에서 유리한 군사분계선을 만들기 위해 다시 고지를 빼앗고 지켜야 했다.1951년 7월, 개성에서 휴전협상이 시작되었다.그리고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협상은 시작되었는데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더 이상 서울을 점령하기 위한 거대한 공세가 반복되는 것도 아니었다.평양을 향해 진격하는 것도 아니었다.대신 전선 곳곳에서 하나의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전투가 벌어졌다.어떤 고지는 지도에서 보면 이름조차 중요하지 않은 작은 봉우리였다.그러나 그곳을 차지하면 적의 움직임을 볼 수 있었..
제31장. 개성에서 시작된 전쟁― 휴전협상은 왜 2년이나 걸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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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장. 개성에서 시작된 전쟁― 휴전협상은 왜 2년이나 걸렸는가사진해설: 1951년 7월 개성에서 시작된 휴전협상. 전선에서는 여전히 포성이 울리고 있었지만 회담장에서는 전쟁을 끝내기 위한 협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포로 송환 문제가 차례로 충돌하면서 협상은 1953년까지 이어졌다.1951년 7월 10일.개성에서 한국전쟁의 새로운 막이 올랐다.이제 전쟁의 질문은 달라졌다.1950년에는 누가 한반도를 차지할 것인가가 문제였다.1951년 봄까지는 누가 상대방을 밀어낼 것인가가 문제였다.그러나 1951년 여름부터는 질문이 이렇게 바뀐다.어디에서 전쟁을 멈출 것인가?문제는 간단하지 않았다.전쟁을 멈추려면 먼저 선을 그어야 했다.그 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가?그리고 더 어려운 문제가 있었..
제30장. 1951년 봄 대공세 ― 전쟁은 왜 끝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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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장. 1951년 봄 대공세 ― 전쟁은 왜 끝나지 않았는가― 중국군의 마지막 대공세와 전선의 고착사진해설: 1951년 4~5월 중국군의 춘계 대공세와 이에 맞선 유엔군의 방어·반격. 이 전투들을 거치면서 전쟁은 더 이상 서울과 평양을 차례로 점령하는 기동전만으로 진행되지 않고, 강력한 화력과 방어선을 중심으로 한 소모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1951년 4월 11일.맥아더가 해임되었다.그러나 한반도의 총성은 멈추지 않았다.오히려 맥아더가 떠난 직후인 4월 22일, 중국군은 거대한 춘계 대공세를 시작했다.목표는 명확했다.서울을 다시 빼앗고 유엔군을 남쪽으로 밀어내는 것.그러나 이번에는 1950년 겨울과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았다.유엔군은 도망치지 않았다.후퇴하면서도 전투를 계속했고, 중국군의 진격 속도를..
제29장. 맥아더는 왜 해임되었는가― 대통령과 장군, 전쟁의 목표를 둘러싼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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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장. 맥아더는 왜 해임되었는가― 대통령과 장군, 전쟁의 목표를 둘러싼 충돌사진해설: 1950년 10월 웨이크섬에서 만난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 그리고 1951년 4월 미국 의회에서 연설하는 맥아더. 두 사람의 관계는 한국전쟁이 진행되면서 '전쟁을 어떻게 끝낼 것인가'라는 전략적 문제를 둘러싼 정면충돌로 발전했다.1951년 4월 11일.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은 극히 이례적인 결정을 내렸다.극동군 총사령관이자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더글러스 맥아더를 모든 지휘관직에서 해임한 것이다.트루먼은 공식 성명에서 맥아더가 미국 정부와 유엔의 정책을 충분히 지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으며, 헌법상 대통령에게 부여된 책임에 따라 지휘권을 변경한다고 밝혔다. (트루먼 도서관)이 사건은 흔히"트루먼이 전쟁 영웅 맥아..
제28장. 서울은 다시 함락되었다― 1·4후퇴와 전쟁의 두 번째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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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장. 서울은 다시 함락되었다― 1·4후퇴와 전쟁의 두 번째 시작사진해설: 1951년 1월, 중국군과 북한군의 남진을 피해 서울과 수도권을 떠나는 피란민들. 1·4후퇴는 단순한 군사적 후퇴가 아니라 수많은 민간인이 다시 한 번 삶의 터전을 버리고 남쪽으로 이동해야 했던 거대한 사회적 이동이었다.1950년 12월 24일.흥남항에서 마지막 배가 떠났다.북한 지역을 빠져나온 약 9만 1천 명의 피란민과 유엔군·국군이 남쪽으로 이동했다.그리고 불과 열흘도 지나지 않아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다.서울이 다시 위험해졌다.1951년 1월 1일 새벽.중국군과 북한군은 대규모 공세를 시작했다.그리고 1월 4일.유엔군과 대한민국 정부는 다시 서울을 떠났다.불과 반년 사이에 서울은세 번의 주인이 바뀌는 도시가 되었다.1..
제27장. 장진호의 겨울― 미국은 왜 ‘승리 직전’에 포위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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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장. 장진호의 겨울― 미국은 왜 ‘승리 직전’에 포위되었는가사진해설: 장진호 전투 당시 미 해병대원들이 혹한과 중국군의 공격 속에서 진지를 지키고 있다. 장진호 전투는 단순한 '미군의 패배'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미군은 포위된 상태에서 전투력을 유지하며 남쪽으로 철수했고, 결국 흥남까지 상당수의 병력과 장비를 보존했다. (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서문 ― 전쟁을 끝내러 간 군대1950년 11월 24일.유엔군은 다시 북쪽으로 움직였다.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대한민국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웠다.그러나 인천상륙작전 이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서울을 탈환했다.평양을 점령했다.북한군은 붕괴했다.국군과 유엔군은 압록강을 향해 올라갔다.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전쟁은 거의 끝난..
제26장. 중국이 들어오다― 압록강에서 나타난 새로운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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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장. 중국이 들어오다― 압록강에서 나타난 새로운 군대사진해설: 1950년 10월 중국인민지원군이 압록강을 건너 북한으로 들어갔다. 중국은 정규군을 공식적으로 파견한다는 형식 대신 '인민지원군'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그러나 실제 전투에 투입된 병력은 중국인민해방군의 정규 편제와 지휘체계를 가진 대규모 병력이었다.서문1950년 10월.전쟁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북한군은 대한민국을 거의 무너뜨릴 뻔했다.그러나 인천상륙작전 이후 상황은 정반대로 바뀌었다.서울이 탈환되었다.38선이 돌파되었다.평양이 함락되었다.김일성 정권은 압록강 쪽으로 밀려났다.그리고 유엔군은 한반도 통일을 눈앞에 둔 것처럼 보였다.바로 그때 중국이 들어왔다.그런데 중국의 참전은 단순히"미군이 북진했기 때문..
제25장. 38선을 넘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전쟁에서 북한을 무너뜨리는 전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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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장. 38선을 넘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전쟁에서 북한을 무너뜨리는 전쟁으로사진해설: 1950년 10월 유엔군과 국군은 38선을 넘어 북한 지역으로 진격했다. 이 순간 한국전쟁은 단순히 대한민국을 방어하는 전쟁에서 북한 정권과 군대를 제거하고 한반도를 통일할 것인가를 둘러싼 전쟁으로 성격이 크게 변했다.서문인천상륙작전이 성공했다.서울이 탈환되었다.부산 방어선의 유엔군과 국군도 북쪽으로 돌파하기 시작했다.그리고 북한군은 무너지고 있었다.이제 전쟁의 질문이 바뀌었다.처음의 질문은 간단했다.대한민국을 구할 것인가?그러나 1950년 9월 말에는 전혀 다른 질문이 등장한다.38선에서 멈출 것인가, 아니면 북한까지 들어갈 것인가?그리고 이 질문은 단순한 군사적 판단이 아니었다.38선은 단순한 지도 위의 선이 아..
제24장. 인천상륙작전― 바다에서 전쟁의 방향이 뒤집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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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장. 유엔군 참전과 맥아더― 한국전쟁은 어떻게 세계전쟁이 되었는가 — 묻고 답하다 제23장. 유엔군 참전과 맥아더― 한국전쟁은 어떻게 세계전쟁이 되었는가제23장. 유엔군 참전과 맥아더― 한국전쟁은 어떻게 세계전쟁이 되었는가사진해설: 1950년 한국전쟁은 미국의 단독 개입을 넘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기반한 다국적 군사행동으로 확대abiture.tistory.com제24장. 인천상륙작전― 바다에서 전쟁의 방향이 뒤집히다사진해설: 1950년 9월 15일, 미 해병대를 중심으로 한 유엔군은 인천에 상륙했다. 인천은 조수 차가 크고 접근 수로가 좁아 상륙작전에 매우 불리한 곳이었지만, 바로 그 위험성이 북한군의 예상 밖 방향에서 공격하는 기습의 조건이 되었다. (Naval History and H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