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배와 논] 이완배X정준희가 뽑은 올해의 F상과 T상은?ㅣ이완배X정준희ㅣ2025년 12월 31일 수요일
[고현곤 칼럼] ‘잃어버린 5년’ 예약한 한국 경제
얼마 전 기획재정부의 대통령 업무보고를 보면서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정부는 2026년 경제성장률 목표를 1.8%로 잡고 크게 고무된 듯했다. 새해를 ‘한국 경제 대도약의 원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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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왜 이 칼럼은 “답을 아는 듯 말하는 헛소리”라는 비판을 받는가 — 문제는 ‘비판’이 아니라 ‘태도’다
이 비판은 감정적 욕설이 아니라, 경제 칼럼의 인식론적 태도를 겨냥한 것이다.
요지는 간단하다.
이 칼럼은 ‘불확실한 구조 문제’를 다루면서, 마치 원인·해법·책임이 이미 확정된 것처럼 말한다.
경제 현실은 본질적으로 가설·확률·조건부 판단의 영역인데, 이 글은 그 불확실성을 제거한 채 도덕적 확신의 언어로 서술한다. 이 지점에서 “사기 같다”는 반응이 나온다.
② 핵심 비판 1 — ‘회색 코뿔소’를 ‘예언’처럼 말한다
🔹 문제 구조
이 칼럼은 한국 경제의 저성장을
➡ “잃어버린 5년을 이미 예약했다”
➡ “위기는 이미 시작됐다”
라고 단정한다.
그러나 경제학적으로 이는 **[가설] 혹은 [시나리오]**에 해당한다.
왜 문제가 되는가?
- 저성장 전망은 확률 분포이지 운명 선언이 아니다
- 구조적 침체 가능성 ≠ 침체의 필연성
- 정책·기술·외부 변수에 따라 경로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이 글은
“일본처럼 될 것이다”
“이미 시작됐다”
라는 사후 검증 불가능한 서사를 현재형 진실처럼 제시한다.
➡ 이것이 바로 **‘답을 아는 자의 말투’**다.
③ 핵심 비판 2 — 원인과 책임을 정치적 취향으로 정렬한다
🔹 인과관계의 단순화
이 칼럼의 기본 도식은 다음과 같다.
돈 풀었다 → 유동성 넘쳤다 → 집값·주가 올랐다 → 양극화 심화
➡ 진보 정부 탓
하지만 이는 경제학적으로 매우 거친 인과 축약이다.
누락된 요소들
- 글로벌 금리 사이클
- 미국 연준의 통화 정책
- 팬데믹 이후 전 세계적 자산 가격 상승
- 공급망 재편과 지정학적 리스크
- 한국 특유의 부동산 구조
이 복합 원인 중 일부만 떼어내
➡ **“지원금·지역화폐 = 근본 원인”**으로 서술한다.
➡ 독자는 여기서 **분석이 아니라 ‘정치적 확신’**을 감지한다.
④ 핵심 비판 3 — 정책 대안이 ‘상식 코스프레’에 머문다
🔹 해법이 너무 익숙하다
이 칼럼이 제시하는 해법은 거의 정해진 레퍼토리다.
- 규제 완화
- 주 52시간 완화
- 돈 풀기 반대
- 원전 필요
- 펀더멘털 강화
문제는 이것들이 틀려서가 아니라,
➡ 마치 논쟁이 끝난 정답처럼 제시된다는 점이다.
왜 비판받는가?
- 주 52시간 완화 ↔ 생산성 향상은 실증적으로 논쟁 중
- 규제 완화 ↔ 투자 증가 역시 조건부
- 원전 확대 ↔ AI 전력 문제는 시간·비용·사회적 합의 변수가 큼
그런데 칼럼은
“이거 하나도 안 하면서 무슨 AI냐”
라는 식으로 복잡한 정책 논쟁을 도덕적 무능 프레임으로 바꾼다.
➡ 이는 분석이 아니라 훈계에 가깝다.
⑤ 핵심 비판 4 — ‘데이터의 선택적 사용’
🔹 숫자는 있지만, 검증 구조는 없다
이 글에는 성장률, 지원금 효과(0.1%p), 스타트업 감소 수치 등이 등장한다.
그러나 문제는 출처·비교 기준·반대 연구에 대한 언급 부재다.
예를 들어:
- “민생 쿠폰 13조 → 0.1%p 상승”
➡ 어떤 연구인가? 단기 효과인가? 승수는? - “스타트업 1만4000개 감소”
➡ 정의 기준은? 휴면 포함? 업종별 차이는?
➡ 숫자는 권위의 장식으로 쓰일 뿐,
독자가 검증할 수 있는 구조는 제공되지 않는다.
⑥ 결정적 지점 — ‘불확실성의 삭제’
이 칼럼이 가장 강하게 비판받는 이유는 이것이다.
경제를 ‘논쟁의 장’이 아니라 ‘이미 결론 난 재판’처럼 말한다.
- 가능성을 필연으로 바꾸고
- 가설을 진실로 포장하며
- 논쟁을 무능 vs 유능의 윤리 문제로 치환한다
그래서 독자는 이렇게 느낀다.
“이 사람은 이미 답을 알고 있고,
나머지는 그 답에 맞춰 세계를 재단하고 있구나.”
➡ 이것이 “사기 같다”는 감정의 핵심이다.
사기의 의미는 거짓말이 아니라 확신의 과잉이다.
⑦ 이 칼럼을 다르게 쓸 수는 없었을까?
만약 이 글이 이렇게 말했더라면 비판은 훨씬 줄었을 것이다.
- “이 경로로 갈 위험이 크다”
- “일본형 장기침체 가능성 중 하나다”
- “이 정책은 이런 조건에서만 효과가 있다”
- “여기에는 반론도 있다”
즉, 경제의 언어를 ‘확률·조건·가설’로 유지했다면
➡ 사설은 경고가 되었을 것이고,
➡ 지금처럼 “사기 같다”는 반응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⑧ 확장 질문 — 다음 단계의 사유
- 경제 칼럼은 어디까지 ‘확신’을 말해도 되는가?
- 경고와 선동의 경계는 무엇으로 나뉘는가?
- 불확실성을 드러내는 글이 왜 대중적으로 불리한가?
- 우리는 ‘단정하는 말’에서 왜 안도감을 느끼는가?
키워드 정리
회색 코뿔소, 확신의 과잉, 인과 단순화, 정치적 경제 서사, 데이터의 권위화, 불확실성 삭제, 예언형 칼럼, 분석과 훈계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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