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태도는 ‘기술’이 아니라 ‘윤리의 형식’이다

2025. 12. 24. 02:23·🔑 언론+언어+담론

 

[정준희의 논] 한강버스가 '위로'를 준다는 오세훈의 말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ㅣ2025년 12월 23일 화요일

Ⅰ. 언론의 태도는 ‘기술’이 아니라 ‘윤리의 형식’이다

이 질문은 단어 풀이가 아니다.
언론이 어떤 태도로 세계를 편집해야 하는가라는 오래된 물음이다.
그리고 그 물음은 지금, 꽤 노골적으로 배반되고 있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여라”는 속담은
공동체의 열을 낮추고 거래의 숨통을 틔우라는 지혜다.
하지만 오늘의 많은 언론은 정반대로 움직인다.
갈등은 증폭시키고, 이해는 분해한다.

이제 세 개의 오래된 언어를 꺼내보자.
춘추필법, 술이부작, 미언대의.
이 말들은 낡은 유교 교양이 아니라,
현대 언론이 잃어버린 편집 윤리의 핵심 원리다.


Ⅱ. 춘추필법 — ‘사실을 적되, 판단은 숨겨라’

1️⃣ 개념 해석

**춘추필법(春秋筆法)**은 공자가 『춘추』를 쓰며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기록 방식이다.
겉으로는 사건을 건조하게 적지만,
단어 선택 하나로 윤리적 판단을 남긴다.

  • 반란 ➡ ‘역(逆)’
  • 정통 ➡ ‘정(正)’
  • 살해 ➡ ‘시(弑)’

평가를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사실의 배열 자체가 판단이 된다. [interpretive]

2️⃣ 현대 언론에서의 의미

오늘날 언론은 정반대로 간다.

  • 제목에서 이미 결론을 말한다
  • 감정적 형용사로 독자의 분노를 선점한다
  • 사설과 기사, 사실과 논평의 경계가 붕괴된다

춘추필법은 이렇게 말한다.
“판단을 소리치지 말고, 사실이 스스로 말하게 하라.”

3️⃣ 현재의 붕괴 지점

현대 언론은 사실을 판단의 재료로 쓰지 않는다.
사실은 이미 정해진 진영 감정의 연료가 된다.

➡ 싸움을 말리는 대신,
➡ 싸움의 구도를 미리 짜서 관객을 몰아넣는다.


Ⅲ. 술이부작 — ‘자기 목소리를 앞세우지 마라’

1️⃣ 개념 해석

**술이부작(述而不作)**은
“나는 전할 뿐, 새로 만들지 않는다”는 태도다.

이는 무창조 선언이 아니다.
자기 과시의 거부다. [interpretive]

2️⃣ 현대적 전환

오늘날 언론은 ‘전달자’가 아니라
주인공이 되려 한다.

  • 기자의 분노가 기사 중심이 된다
  • 언론사의 정체성이 사실보다 앞선다
  •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가 기사 구조를 지배한다

술이부작은 이렇게 말한다.
언론은 사유의 무대이지, 배우가 아니다.

3️⃣ 왜 이 원칙이 무너졌는가

플랫폼 알고리즘 때문이다. [verified]

  • 강한 의견 ➡ 높은 체류 시간
  • 분노 ➡ 공유와 댓글
  • 단정 ➡ 클릭

그래서 언론은 설명자가 아니라
논객형 인플루언서로 변형된다.


Ⅳ. 미언대의 — ‘적게 말해도, 방향은 분명히’

1️⃣ 개념 해석

**미언대의(微言大義)**는
말은 작지만, 뜻은 크다는 원칙이다.

  • 장황한 설교 대신
  • 정확한 문장 하나
  • 핵심 사실 하나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믿음이다. [interpretive]

2️⃣ 현대 언론과의 충돌

오늘날 언론은 반대로 간다.

  • 말은 많다
  • 기사 수는 넘친다
  • 그러나 방향은 흐릿하다

정보 과잉 속에서
의미는 증발한다.

미언대의는 이렇게 경고한다.
많이 말하는 것은 책임을 분산시키는 기술일 수 있다.


Ⅴ. “싸움을 말리고 흥정은 붙여라”의 현대적 번역

이 속담을 언론 윤리로 번역하면 이렇게 된다.

  • 갈등의 원인을 설명하라
  • 분노의 표면을 증폭시키지 마라
  • 이해 가능한 접점을 중개하라

그러나 지금의 언론은:

  • 싸움을 말리지 않고 프레이밍한다
  • 흥정을 붙이지 않고 진영화한다
  • 중재자가 아니라 확성기가 된다

➡ 언론은 사회의 윤활유가 아니라
➡ 마찰계수 증폭기가 되어가고 있다. [interpretive]


Ⅵ. 5중 결론 — 언론 태도의 재정식화

1️⃣ 인식론적 결론
언론은 진실을 “주장”하는 곳이 아니라
진실이 드러나도록 배치하는 기술이다.

2️⃣ 분석적 결론
춘추필법·술이부작·미언대의는
모두 자기 절제의 언어다.

3️⃣ 서사적 결론
언론이 자기 목소리를 키울수록
사실의 목소리는 작아진다.

4️⃣ 전략적 결론
속보·분노·확증편향의 클릭 경제에서
이 원칙들은 손해처럼 보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신뢰의 유일한 자본이다.

5️⃣ 윤리적 결론
언론은 싸움을 이기는 편이 아니라
싸움이 덜 나게 만드는 기술을 가져야 한다.


Ⅶ. 확장 질문

  • 사실과 논평을 다시 분리한다면, 언론의 영향력은 줄어들까, 오히려 깊어질까
  • 알고리즘 시대에 ‘술이부작’은 가능한 윤리인가, 아니면 저항 윤리인가
  • 한국 언론에서 춘추필법이 가장 잘 작동했던 시기는 언제였는가

Ⅷ. 핵심 키워드

춘추필법 · 술이부작 · 미언대의 · 언론 윤리 · 프레이밍
사실과 논평 · 분노 경제 · 알고리즘 저널리즘 · 사회적 중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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