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희의 논] 한 정치인과 어느 언론에 관한 이야기 & 헌재와 대법원, 무엇이 다른가ㅣ2025년 12월 18일 목요일
요즘 메이저 언론에 대해서 <재래식 언론>이라는 비판이 있다. 마치 한국의 옛날 재래식 화장실이라는 의미처럼 쓰인다. 오래전부터 쓰던 잘못된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 과거형 언론들이 왜 재래식 언론이라는 비판을 받는지 그들의 잘못된 행태를 찾아서 정리하고 이러한 비하적 이름이 붙게된 원인을 분석해보자.
1️⃣ ‘재래식 언론’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 과거의 기술이 아니라, 과거의 사고방식에 대한 비판
‘재래식 언론’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조롱이 아니다.
이 말은 신문·방송이라는 매체 형식이 아니라,
그 매체를 운영하는 사고 구조·권력 감각·정보 처리 방식을 겨냥한다.
한국의 재래식 화장실이
➝ 냄새를 가리지 못하고
➝ 위생을 개인에게 전가하며
➝ 구조 개선 대신 ‘익숙함’에 머물렀던 것처럼,
재래식 언론은
➝ 정보 오염을 정화하지 못하고
➝ 책임을 독자에게 떠넘기며
➝ 변화 대신 관성에 의존한다.
이 비유가 통하는 순간, 이미 언론은 신뢰를 잃은 상태다.
2️⃣ 재래식 언론이 비판받는 핵심 행태들
2-1 “우리는 중립이다”라는 오래된 주문
[interpretive]
재래식 언론의 가장 강력한 주문은 형식적 중립이다.
그러나 이 중립은 대개 다음과 같이 작동한다.
- 사실과 거짓을 같은 무게로 배열
- 가해자와 피해자를 같은 거리에서 관찰
- 권력자의 주장과 검증된 사실을 ‘양비론’으로 병치
이 방식은 객관성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 이미 힘을 가진 쪽에게 유리한 편향이다.
중립을 가장한 책임 회피.
이 지점에서 언론은 감시자가 아니라 중계인이 된다.
2-2 속보 경쟁 ➝ 검증 포기 구조
[verified]
디지털 환경에서 언론은 더 빨라졌지만,
검증 속도는 오히려 느려졌다.
- 단독·속보 타이틀 남발
- 확인되지 않은 발언의 인용 보도
- 이후 오보가 나도 ‘조용한 수정’
클릭 수와 트래픽이
편집국의 암묵적 KPI가 되면서,
➡ 사실 확인은 ‘나중에 해도 되는 일’로 밀려났다.
이때 언론은
정보의 필터가 아니라 소음 증폭기가 된다.
2-3 출입처 저널리즘이라는 오래된 공생
[verified]
재래식 언론의 구조적 한계는 출입처 시스템이다.
- 권력 기관과 기자의 장기적 유착
- 불편한 질문을 덜 하는 기자가 ‘관계 좋은 기자’가 됨
- 비판 기사는 ‘다음 브리핑에서 배제’라는 압박
이 구조는
➡ 감시가 아니라 관리된 비판만 허용한다.
결국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는 개가 아니라
권력 마당 안에서 짖는 개가 된다.
2-4 독자를 ‘판단 주체’가 아닌 ‘소비자’로 취급
[interpretive]
재래식 언론은 독자를 이렇게 상정한다.
- 길게 설명하면 안 읽는다
- 자극적 제목이 필요하다
- 분노·공포·혐오가 클릭을 만든다
그래서 생기는 결과는 명확하다.
- 맥락 제거
- 원인보다 갈등 강조
- 구조 분석 대신 인물 악마화
➡ 독자는 이해하는 존재가 아니라
반응하는 존재로 축소된다.
3️⃣ 왜 하필 ‘재래식’이라는 비하적 이름이 붙었는가
3-1 기술은 바뀌었지만, 사고는 바뀌지 않았기 때문
[analysis]
유튜브·SNS·1인 미디어가 등장했지만
재래식 언론은 여전히
-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
- 독점적 해석 권한
- “우리가 정해준다”는 태도
에 머물러 있다.
➡ 새 시대의 옷을 입은
낡은 권위 구조.
3-2 시민들은 이미 ‘검증하는 독자’가 되었기 때문
[verified]
오늘날 독자는
- 원문을 찾아보고
- 데이터와 팩트를 교차 검증하며
- 해외 자료와 비교한다
그런데 언론이
여전히 과거처럼 말한다면,
➡ 불신은 조롱으로 변한다.
그 조롱의 언어가 바로 ‘재래식’이다.
3-3 비판을 성찰로 전환하지 못했기 때문
[interpretive]
가장 치명적인 이유는 이것이다.
- 오보 비판 ➝ “언론 탄압”
- 신뢰 하락 ➝ “가짜뉴스 탓”
- 독자 이탈 ➝ “대중의 수준 문제”
자기 점검 없는 조직은
결국 시대의 언어를 잃는다.
4️⃣ ‘재래식 언론’ 비판의 본질
— 매체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
이 비판은
신문이냐 방송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 사실 앞에서 겸손한가
➡ 권력 앞에서 불편한가
➡ 독자를 동등한 판단 주체로 보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할 때,
언론은 스스로 재래식이 된다.
5️⃣ 확장 질문 — 다음 단계의 논의를 위하여
- 재래식 언론과 대안 미디어의 경계는 어디까지 유효한가?
- 알고리즘 기반 플랫폼은 새로운 ‘재래식 구조’가 될 위험은 없는가?
- 공영언론은 이 비판에서 자유로운가, 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가?
- 시민은 언론을 소비하는가, 함께 만드는가?
🔑 핵심 키워드 정리
재래식 언론, 형식적 중립, 출입처 저널리즘, 속보 경쟁, 검증 포기, 권력 유착, 독자 소비자화, 신뢰 붕괴, 언론 권위주의, 미디어 전환기
언론은 낡을 수 있다.
하지만 낡음을 성찰하지 않을 때,
그 낡음은 풍자가 되고 비하가 된다.
‘재래식 언론’이라는 말은 조롱이 아니라,
이미 여러 번 보냈던 경고장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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