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을 신화화하는 시선의 폭력성

2025. 11. 22. 02:52·🔑 언론+언어+담론

 

 

카이지식 명언의 다른 방향성을 하나 보여주겠다. 아이들이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달리는 대회. 이 대회에 참가한 한 아이가 시작하자마자 그만 넘어졌다. 그러나 일어나서 다시 달리고 마침내 1등을 한다. 이 영상의 제목은 <포기하지 않으면 생기는 일>이라고 한다. 댓글을 보면 이런 반응들이 보인다. 

 

<삶의 가치는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졌으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찐 감동입니다>

<세상에.. 넘어졌는데도 1등이라니..원체 잘하는 아이인데다 멘탈또한 강하구나 넘 훌륭합니다~>

<이친구는 앞으로 뭘하든 뭘꿈꾸든 다 이룰것같다 너무 멋있다!!>

< 어린 너에게 인생을 배운다! 👍>

<  감동이네요 저리 여리여리한 아이가 여리한게 아니었군요 저 강단, 투지,인내. 아~~~>< 왜 눈물이 나는지. 멋진 어린이네요
<박수를 보내요 ❤❤❤>

<어머 왜 눈물이… 엉덩이 노오래서 꿀벌같이 귀여워서는 포기하지않고 끝까지가는 아이가 왜케 귀엽고 대견한지.. 감동이네요😢>

 

이 글들이 추천을 1만개 이상씩 받은 댓글들이다. 그러나 문득 가슴에 서늘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나머지 끝까지 달린 아이들은 무의미한 경주를 한 것인가? 
 

넘어진 자를 신화화하는 시선의 폭력성

질문자의 불안감은 정확하다. 그 서늘함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우리 문화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를 의심하게 만드는 신호다.

1단계: 댓글들이 실제로 말하고 있는 것

표면적으로는 "포기하지 말자"는 응원처럼 보이지만, 깊이 들어가면 다른 메커니즘이 작동 중이다.

  • 넘어진 경험의 드라마화 ➡ "삶의 가치는 넘어졌을 때 일어나는 것"이라는 명제는, 역설적으로 성공한 자만을 위한 서사다. 만약 그 아이가 1등이 아니었다면? 그 댓글은 "아름다운 실패"로 재해석되었을 것이다. 즉, 넘어진 것 자체가 아니라 그 후의 결과가 의미를 부여한다.
  • 역경 신화의 독점 ➡ 끝까지 달린 다른 아이들은 역경을 겪지 않았거나, 겪었어도 그것이 드라마틱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댓글들은 암묵적으로 이들을 **"평범한 성공자"**로 분류하고, 오직 넘어졌다가 일어난 자만을 신화화한다.
  • 멘탈, 투지, 인내라는 개인화된 미덕 ➡ "멘탈이 강하다", "투지가 있다"는 표현은 그 성공을 개인의 내적 특성으로 돌린다. 하지만 이것은 위험한 환상이다. 그 아이는 운이 좋았을 수도 있고, 체력이 더 좋았을 수도 있고, 다른 아이들이 그날 컨디션이 안 좋았을 수도 있다.

2단계: 나머지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침묵의 폭력

질문자가 느낀 서늘함의 진짜 정체는 여기다.

끝까지 달린 아이들 중:

  • 처음부터 넘어지지 않은 아이 ➡ "특별하지 않은 승자"
  • 중간에 힘들었지만 끝낸 아이 ➡ "자신의 드라마를 증명하지 못한 자"
  • 2등, 3등으로 끝난 아이 ➡ 완전히 지워진다

우리는 역경을 극복한 자의 이야기만 기억하고, 평탄하게 잘한 자의 이야기는 무시한다. 이것은 문화적 편견이다. 이 편견 속에서는 이렇게 암묵적인 메시지가 전달된다:

"넘어지지 않은 성공은 덜 소중하다." "역경 없는 성취는 감동을 만들지 못한다." "진짜 위대함은 고통을 통과한 자만이 소유할 수 있다."


3단계: "포기하지 않으면 생기는 일"의 구조적 거짓

제목 자체가 인과관계를 조작한다.

  • 실제 인과관계 ➡ 넘어짐 → 일어남 → (여러 변수들) → 1등
  • 제목이 암시하는 인과관계 ➡ 포기하지 않음 → 자동으로 1등

하지만 현실은:

  • 포기하지 않은 아이들 중 대부분은 1등이 아니다.
  • 포기한 아이들 중에도 현명한 판단을 한 아이들이 있을 수 있다.
  • 1등은 포기하지 않음의 필연적 결과가 아니라, 그 중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다.

4단계: 감응 구조의 메커니즘

왜 이 영상과 댓글들이 이렇게 많은 사람을 감동시킬까?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서 넘어져 있다. 일과, 관계, 자존감, 미래 불안 속에서. 그 영상은 우리가 다시 일어설 가능성의 판타지를 제공한다. 그리고 댓글들은 그 판타지를 도덕적 가치로 변환한다.

"그 아이처럼 나도 할 수 있을 거야" "나의 넘어짐도 의미가 있을 거야"

이 감정은 따뜻하지만, 동시에 위험하다. 왜냐하면:

  1. 생존주의적 신화화 ➡ "열심히 하면 다 된다"는 환상이 강화된다.
  2. 실패의 개인화 ➡ 넘어지고 일어나지 못한 사람은 "멘탈이 약한 사람"이 된다.
  3. 구조적 부정 ➡ 장애, 질병, 불공정한 조건들이 지워진다.

5중 결론: 다섯 겹의 해석

인식론적 차원 ➡ 우리는 드라마틱한 것만 기억하는 인지 편향을 가지고 있다. 일관된 성공보다 극적인 회복이 더 강렬하게 각인된다.

분석적 차원 ➡ 댓글들이 칭송하는 것은 사실 결과적 성공이지, 노력의 질 자체가 아니다. 같은 노력을 한 아이가 2등이었다면, 같은 찬사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서사적 차원 ➡ 우리 문화는 "고통 → 회복 → 승리"의 삼막 구조를 신성화해왔다. 이것은 종교적, 문학적 전통에서 비롯된 것인데,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전략적 차원 ➡ 만약 이 영상이 "포기하지 말자"는 메시지로만 소비된다면, 우리는 구조적 불공정을 개인의 노력으로 은폐하게 된다. 진짜 질문은 "왜 그 아이만 넘어졌는가"가 아니라, "왜 경주에 참가한 대부분의 아이들이 매 순간 넘어질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가"여야 한다.

윤리적 차원 ➡ 질문자의 서늘함은 정의로운 의심이다. 우리가 "감동"이라는 이름으로 무의미한 경주를 한 아이들의 노력을 지우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질문은, 그 자체로 우리 문화를 갱신하는 힘을 가진다.


여백의 질문으로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성공 이야기를 기억해야 할까?

넘어지지 않은 아이의 일관된 기량, 끝까지 달린 모든 아이들의 단순한 완주—이런 것들은 왜 드라마가 아닌가?

아마도 그것은 우리의 인식 구조가 극적 전환을 의미의 증거로 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지속도 그 나름의 위대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자꾸 잊는다.

너도 그걸 할 수 있는 것이다—하지만 그것의 가치는 결과로만 증명되지 않는다는 것도, 동시에 너는 알고 있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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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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