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토론 제안 오세훈 "정부가 서울시 매도…종묘 앞 흉물, 그대로 둬야 하나"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 종로구 종묘 앞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는 재개발에 대한 비판 여론이 나오자, 관련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서울시는 종묘로부터 약 180m 떨어진 세운4구역 재개발 계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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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그럼 이 문제를 역사적 맥락과 도시계획의 윤리, 문화유산 보존 원칙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해보자.
단순히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 “무엇을 도시의 발전이라 부를 것인가”라는, 서울이라는 공간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다.
Ⅰ. 종묘와 도시의 경관권: ‘흉물’이란 말의 위험성
오세훈 시장은 세운상가 일대를 “흉물”이라 표현했다. 이 단어 선택 자체가 문제의 핵심이다.
세운상가는 1960년대 근대화의 상징이자, 한국전쟁 이후 폐허에서 일어난 산업적·도시적 실험의 흔적이다.
물론 노후화되고 낙후된 지역임은 분명하나, 그것이 곧 “도시의 흉물”이라는 평가는 역사적 가치에 대한 무지와 무례를 드러낸다.
도시는 켜켜이 쌓인 시간의 집합체이지, 미관만으로 재단할 수 있는 전시품이 아니다.
게다가 종묘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유는 “공간적 조화와 의례적 질서” 때문이다.
종묘의 의미는 제례 음악이나 제향만이 아니라, 그 주변의 ‘여백’, 즉 조선 왕조의 ‘신성한 경계’를 시각적으로 보존하는 데 있다.
그런데 이 여백 위에 145미터짜리 빌딩이 들어서면, 그 질서감은 무너진다.
경관권(景觀權, right to view)은 단순한 시각적 미관이 아니라 유산의 맥락을 존중할 권리이기도 하다.
Ⅱ. ‘녹지축’이라는 언어적 위장
오 시장은 “남산부터 종묘까지 녹지축이 이어진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오히려 종묘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도시계획 언어의 전형적 **“그린워싱(greenwashing)”**이다 — 즉, ‘녹지’라는 단어로 개발의 본질을 감추는 수사다.
현재 서울시의 세운4구역 계획은, 종묘로부터 180m 거리 내에서 최고 145m 고층 건물 건립을 허용한다.
이는 ‘녹지축’이 아니라, 녹지 사이에 고층의 벽을 세우는 구조다.
도시의 축선은 단순히 물리적 연결선이 아니라, 시각적, 심리적, 역사적 흐름이다.
그 흐름을 절단하는 고층건물은 아무리 주변에 나무를 심어도, 문화적 단절을 초래한다.
게다가 “종묘에서 멀어질수록 점진적으로 높아지는 건물 배치”라는 주장은
경관 시뮬레이션 결과를 무시한 궤변이다.
건물의 높이 변화보다 중요한 건 **시선축(line of sight)**이다.
종묘의 정전 앞에서 북쪽으로 바라보면, 건물 높이 100m만 되어도 하늘선을 잠식한다.
즉, ‘녹지축’이 아니라 ‘시선 차단축’이 되는 셈이다.
Ⅲ. “종묘 훼손이 없다”는 논리의 허상
오세훈 시장은 “종묘를 훼손할 일이 결단코 없다”고 단언했지만, 이는 문화유산 보호 원칙에 대한 오해다.
‘훼손’은 물리적 파괴만을 뜻하지 않는다.
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에 따르면, 훼손(damage)에는 다음 세 가지가 포함된다:
- 물리적 훼손 (physical damage)
- 시각적 간섭 (visual intrusion)
- 의례적·상징적 의미의 왜곡 (symbolic degradation)
종묘의 경관과 제례적 의미는 **“조선 왕조의 질서와 자연의 조화”**라는 상징 위에 서 있다.
그 경관에 초현대적 고층건물이 등장하면, 그것은 물리적 파괴가 아니더라도 상징적 훼손에 해당한다.
이건 마치 교토의 금각사 옆에 유리 빌딩을 세우며 “절은 그대로 두었으니 훼손 아님”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Ⅳ. 개발과 보존의 가짜 대립
오 시장의 담론은 “개발 vs 보존”이라는 낡은 이분법에 갇혀 있다.
하지만 현대 도시계획의 핵심은 ‘보존적 발전(conservation-based development)’이다.
도시의 정체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지역의 생명력을 회복하는 방향이다.
서울의 중심부에서 ‘역사적 경관’은 자원이지 장애물이 아니다.
파리의 루브르나 로마의 포로 로마노가 경제 발전을 막았는가?
오히려 그들은 도시의 문화경제를 이끄는 핵심 동력이다.
Ⅴ. 정치적 책임의 전가
오세훈 시장은 “중앙정부가 서울시를 매도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종묘는 단순한 ‘서울시 소유 부지’가 아니라 국가적 문화유산이다.
서울시장이 ‘지방자치’를 명분으로 세계유산의 시각적 경계를 재단한다면,
그것은 행정 권한의 오남용이다.
유산 보호는 정치적 소유가 아니라 공동의 기억에 대한 윤리적 책임이다.
결론: 도시의 미래는 ‘높이’가 아니라 ‘깊이’에 달려 있다
오세훈 시장의 주장은 현대 도시의 심각한 착시를 드러낸다.
그는 “활력”과 “경제”를 외치지만, 도시의 활력은 유리벽에서 오지 않는다.
도시는 시간의 축적과 인간의 관계망에서 생명력을 얻는다.
종묘 앞에 145미터 빌딩을 세우는 일은 ‘미래’를 만드는 게 아니라,
서울의 역사적 깊이를 얇게 깎아내는 일이다.
진짜 도시의 품격은 새 건물의 높이보다, 옛 자취를 어떻게 다루느냐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그 여백을 존중하지 못하는 도시에는 — 아무리 높은 빌딩이 세워져도,
하늘보다 낮은 철학만이 남는다.
원한다면, 이 논지를 바탕으로 신문 기고문 형식의 비평문(칼럼)으로 재구성해드릴 수도 있다.
그렇게 하면 일반 독자에게도 설득력 있게 읽히는 사회비평문 형태로 다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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